[주일설교, 2021.01.17, 김진영 담임목사] 요나단: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1년 1월 17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요나단: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13장 15-23절, 14장 6-10절 |
| 함께 읽은 말씀 | 확인되지 않음. 설교 중 언급: 다니엘 3장(세 친구), 사사기 7장(기드온), 사무엘상 17장(골리앗), 사무엘상 23:17 |
| 영상 | https://youtu.be/yDo1S8he0SE (설교 약 30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연하다·영화관·11"→요나단, "4 5로 왕·4호 랑"→사울 왕, "변기 된 소년"→병기 든 소년, "골리 학과"→골리앗과) 성경 본문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이 설교는 사무엘서를 이어서 살피는 연속 설교의 한 편입니다. 설교 첫머리에서 사무엘서 전체의 주제를 다시 짚으신 뒤 요나단을 다루셨습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사무엘서의 주제 | 교회가 침체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쓰시는 사람을 통해 교회를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불러 쓰시는가. |
| ② 절망적인 상황 | 안으로는 왕의 불순종과 백성의 탈영, 밖으로는 무기도 숫자도 압도하는 블레셋. 이길 가능성이 하나도 없다. |
| ③ 요나단의 믿음 하나 |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 — 우리가 부족해도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 |
| ④ 요나단의 믿음 둘 |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 — 구원은 군사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
| ⑤ 성숙한 믿음 | 능력만 믿고 밀어붙이지 않고, 지금 그렇게 해 주실지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묻는다. 다니엘의 세 친구, 기드온과 같다. |
| ⑥ 표징과 승리 | 원수의 입에서 "올라오라"는 말이 나오자 확신을 얻고 올라가 큰 승리를 이룬다. |
| ⑦ 대비되는 사람 | 사울 왕 — 현실만 바라보고 숫자를 계산하며 꼼짝하지 않는다. 실제 생활에서는 무신론자처럼 행동한다. |
| ⑧ 자라지 않는 믿음 | 아들의 믿음으로 승리를 경험하고도 사울은 회개하지도 자라지도 않았다. 골리앗 앞에서도 똑같았다. |
| ⑨ 요나단과 다윗 | 요나단은 다윗의 친구라기보다 본보기였다. 왕이 되지 못하는 것을 개의치 않은 사람이다. |
| ⑩ 아버지와 아들의 다른 끝 |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구원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 ⑪ 질문 | 코로나와 여러 어려움 속에서 나는 지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
| ⑫ 결론 | 화려하게 시작해 심판으로 끝난 사울이 아니라, 짧지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요나단처럼 살아가자. |
3. 결론 — 사울처럼이 아니라 요나단처럼
- 하나님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표징(사인)을 구하며, 자기가 싸워야 할 믿음의 선한 싸움에 힘쓰는 사람을 통해 그 가정과 교회와 그 사람의 삶에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분명히 보여 주신다. 그 믿음으로 이 시기를 잘 지나가자.
- 사울 왕처럼 화려하게 시작했다가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의 형벌로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짧지만,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요나단과 같이 살아가는 은혜를 구하자.
-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마칠 때마다 부르는 찬송이 있다.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사울은 주님을 못 본 사람이다. 그런데 요나단은 그의 인생의 길에서 주님을 만난 사람이다.
- 예수님께서 요나단을 향해 뭐라고 하시겠는가. "착하고 훌륭한 종이었다.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두 팔을 벌리고 안아 주셨을 것이라고 목사님은 믿는다고 하셨다. 그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목사님은 설교 끝에 "두 가지 기도를 하겠습니다" 하시며 기도 제목을 주셨다.
- 믿음의 눈 — "하나님, 지금 제가 속해 있는 상황과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주십시오."
- 믿음의 선한 싸움 —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게 하시는 뜻을 듣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도록 은혜를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하나님은 어느 시대이든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을 찾으시고, 그 사람들을 통해 교회와 가정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시기를, 사울과 같이 현실만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기를, 요나단과 같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질병과 환난과 연약함 속에서도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은혜를 주시기를 구했다. 또 지금의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쓰시는 직분자와 사람들을 세워 주시고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 우리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교인이 되게 해 주시기를 구했다(이 부분은 통성 기도와 겹쳐 자막이 고르지 않다). 끝으로, 사사 시대와 같이 암울한 시대에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은혜와 영광을 보이시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드리고, 교회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요나단과 같이 현실 속에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리는 서울중앙교회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13:15-23, 14:6-10)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13:15 | 사무엘이 길갈을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갔다.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을 세어 보니 600명가량이었다. |
| 13:16 |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을 쳤다. |
| 13:17-18 | 블레셋 진영에서 노략꾼들이 세 부대로 나왔다. 한 부대는 오브라 길로 수알 땅 쪽으로, 한 부대는 벧호론 길로, 한 부대는 광야 쪽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지역 길로 향했다. |
| 13:19 | 그때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대장장이)이 없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고 했기 때문이다. |
| 13:20-21 |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습, 삽, 도끼, 괭이 같은 농기구의 날을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려가야 했다. |
| 13:22 |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도 창도 없었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다. |
| 13:23 |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다. |
| 14:6 |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든 소년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한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
| 14:7 | 무기를 든 자가 대답했다.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고 앞서 가십시오. 제가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겠습니다. |
| 14:8 | 요나단이 말했다.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우리를 그들에게 보이자. |
| 14:9 | 그들이 "우리가 너희에게로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면 우리는 있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올라가지 말자. |
| 14:10 |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고 하면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다는 뜻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될 것이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사무엘서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
목사님은 성경을 읽을 때의 자세부터 말씀하셨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면 사무엘서를 통해 하나님이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구약의 교회든 신약의 교회든, 교회가 굉장히 어렵고 침체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그 교회에 부흥을 주시되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을 통해 교회를 회복시켜 주신다.
- 사무엘서는 사사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300년간 지속된 사사 시대의 특징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가나안의 문화와 타협한 교회다.
- 그 교회의 영적인 상태는 성경이 반복해서 말하듯이 자기 소견에 좋을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시대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로 부름 받았으나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사사기를 볼 때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비참한 영적 침체가 있다.
- 하나님은 그 침체된 교회에 은혜를 주셔서 거룩한 교회로 변화시키신다. 그때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 사무엘서의 주제다.
- 하나님은 사무엘을 쓰셨다. 사울을 불러 쓰셨다. 다윗을 불러 쓰셨다. 그 밖에 여러 믿음의 사람을 불러 쓰셨다. 구약의 교회든 지금의 우리 교회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불러 쓰시는지, 하나님이 쓰셨던 직분자들과 믿음의 교인들은 어떤 사람인지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정리하면 사무엘서 전체의 주제는 이것이다. 혼돈되고 영적으로 침체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회복시키실 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불러 쓰시고 어떤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가. 그 가운데 오늘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고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는 사람이 요나단이다.
6-2. 이길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상황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본문이 첫 번째로 보여 주는 메시지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스라엘이 세상을 향해 이길 가능성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내부의 상황
- 영적인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왕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두렵고 떨리는 마음 가운데 영적인 지도자의 자리에서 실수를 하고 있다.
- 백성들은 두려워서 다 도망가고 있다.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앞두고 다 탈영했다.
- 집으로 도망간 것이 아니다. 굴속으로, 땅속으로, 안전한 곳으로 다 무기를 버리고 도망갔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까지 도망가 버렸다.
- 영적인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고사하고 인간적인 용기도 없는 상태다.
외부의 상황
- 오늘 본문은 철로 만든 칼을 가진 군인이 사울 왕과 요나단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 철기 연장을 벼리려면 블레셋에 가서 돈을 주고 해야 했는데, 그 비용이 엄청나게 비쌌다고 본문은 기록한다.
- 군사도 흩어졌는데, 똘똘 뭉쳐서 싸워도 이길 수 없는 블레셋의 군대는 규모와 숫자와 무기에서 이스라엘을 압도하고 있다.
도무지 상황이 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요나단이라는 사람을 주목하신다.
6-3. 요나단의 두 가지 믿음
본문을 자세히 보면, 요나단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처한 현실, 지금 교회가 처한 현실에서는 도무지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요나단이다. 성경은 요나단의 믿음을 몇 군데에서 짧게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 —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
- 요나단에게는, 하나님은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
- 요나단은 이 싸움을 이렇게 본다. "우리가 부족합니다. 영적인 지도자인 사울 왕이 불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언약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돌아보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있다.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 없을 때가 없다. 죄 없다고 착각할 때는 있다. 그러나 솔직히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고, 예배 때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기준 앞에 서 보면 죄 없는 교인, 완전무결한 교인은 한 사람도 없다. 요나단이 이 사실을 안다.
- 그럼에도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을 위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블레셋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다. 할례 받지 않은 원수들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②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 — 숫자에 달려 있지 않다
-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군인의 숫자가 많고 적은 것에 따라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다.
요나단에게는 이 두 가지 믿음이 있다. 우리가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군사 수에 따라 승리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능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6-4. 더 성숙한 믿음 —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묻다
요나단에게는 여기서 더 나아간, 더 성숙하고 좋은 믿음이 있다.
성숙하지 못한 '좋은 믿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인들 가운데 믿음이 참 좋은데 성숙하지 못한 좋은 믿음을 가진 분들이 있다. 목사님은 "좀 유치한 이야기지만" 하시며 이렇게 예를 드셨다.
-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일하실 수 있으니까, 내가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승진시켜 주시고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만 생각했지,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나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 하나님은 아무리 숫자가 적어도 그 숫자를 통해 능히 이기실 수 있다. 그것은 확실히 믿는다.
- 그다음에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여쭙는다. "하나님, 제가 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지금 제가 그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에 과연 하나님께서 그 능력과 은혜를 우리를 위해 지금 이루어 주실지 안 이루어 주실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싶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과 겸손
요나단에게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 불에 들어가기 전에 느부갓네살에게 고백했던 그 믿음과 그 겸손이 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풀무 불 가운데 던져 넣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풀무 불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 있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 그리고 똑같은 겸손함과 신중함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풀무 불에 들어가서 죽는 것이라면, 건져 주지 않고 죽으라고 하신다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 세 친구의 믿음이 요나단에게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적은 숫자로도 능히 이기실 분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그런 은혜와 능력을 우리를 위해 베푸실지 안 베푸실지, 겸손하게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야겠다."
6-5. 원수의 입에서 나온 표징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이 기회를 주실지 안 주실지의 증거로, 블레셋 원수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하나님의 답을 듣겠다고 했다.
- 쉽게 말하면 지금 블레셋은 높은 고지에 있다. 요나단은 밑에서 올라가면서 공격하려는 것이다. 전쟁은 위에서 밑으로 공격해야 이기는데, 무기도 변변치 않은 사람이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공격하려 한다.
- "우리가 너희에게 가겠다"고 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기다려라, 우리가 내려가서 공격하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니 포기하겠다.
- 그런데 원수의 입에서 "그래, 올라와 봐라" 하는 말이 나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하나님의 사인(표징) 으로 믿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하나님의 그 능력을 믿고 공격하겠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사인을 보여 주십시오." 이것이 요나단의 기도다.
사사 시대의 기드온
사사 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미디안과 싸울 때 기드온의 믿음이 약하고 흔들리니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주셨다. 그래도 믿지 못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원수의 입을 통해 승리의 확신을 주셨다. 밤에 가서 들어 보니 미디안 병사들이 꿈꾼 것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우리가 질 거야"라고 하는 원수의 말을 듣고 기드온이 확신을 얻었다.
요나단이 하나님께 이것을 여쭌 것이다. "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제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 앞에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에게, 교회에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이번 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실지 사인을 보여 주십시오. 적군의 입에서 '올라오라'는 말이 나오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사인인 줄 알고 순종하며 나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승리
- 하나님께서 요나단의 기도를 들으시고, 원수의 입에서, 불신자의 입에서, 적군의 입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요나단에게 보여 주셨다.
- 요나단은 병기 든 소년과 이야기할 때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난 다음에는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다." 그 대답을 통해 확실히 넘겨졌다. "나와 함께 가자."
- 병기 든 소년을 데리고 가서 큰 승리를 이룬다.
개인적으로든 교회든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 있을 때 하나님을 본능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6-6. 대비되는 사람 — 현실만 바라보는 사울 왕
요나단과 참 대비되는 사람이 있다. 뜻밖에도 사울 왕이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요나단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앞장서서 나가야 할 사람은 사울 왕이다.
- 사울은 인간적으로, 군사적으로 여러 재능이 있고 뛰어난 사람임이 분명하다.
- 그런데 사울 왕은 문제가 벌어졌을 때 현실만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믿음이 발휘되지 못한다.
사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군인들의 숫자를 계산하고 있다. 탈영한 사람들을 보고, 나와 함께 있는 숫자가 몇 명인지 세어 보니 600명밖에 안 된다.
- 이 600명으로 블레셋과 싸워 이길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무기가 있는가? 없다.
- 그러니 사울 왕은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한다. "지금은 싸울 수 없다. 나가서 이길 수도 없다. 지금은 그냥 숨어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군대를 데리고 꼼짝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동안 블레셋은
-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군대를 세 부대로 나누었다. 세 부대가 각기 다른 쪽으로 나가 온 이스라엘 땅을 약탈하고 다닌다(각 부대의 방향을 말씀하신 대목은 자막이 깨져 정확히 옮기기 어렵다. 본문 13:17-18 참조).
-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 온 이스라엘의 영토가 블레셋 군대에게 약탈당하고 있는데도 사울 왕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 현실만 바라본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나가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꼼짝하지 않는다.
- "내게 있는 군대, 내게 있는 실력, 내게 있는 힘으로 구원할 수 있을까?" 합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 그러니 사울 왕은 나가지 않는다.
실제 생활 속의 무신론자
현실만을 바라보는 교인, 하나님을 믿지만 어떤 문제가 벌어졌을 때 현실만 바라보고 있는 교인은 실제 생활 속에서 무신론자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될 위험이 크다.
사울 왕이 그렇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 그 믿음이 발휘되어야 할 때의 모습을 보면 무신론자와 똑같이 행동한다.
6-7. 경험하고도 자라지 않은 믿음
사울 왕은 경험을 했다. 자기 아들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큰일을 이루시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사울 왕이 회개했는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렇지, 내가 그때는 믿음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능히 이기시는 것을 경험했으니 이제는 내가 믿음으로 나가서 싸워야겠다" 하며 믿음이 자라고 회개했는가?
- 이 사건이 있고 난 뒤 십 년, 이십 년 후에 골리앗과의 전쟁을 하게 된다.
-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사울은 똑같이 행동한다. "일대일로 붙자" 하는데 나가지 않는다. 왜 안 나가는가? "내가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 하나님의 승리는 숫자와 신장과 키와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그래도 교회를 위하시고 이스라엘을 위하신다는 그 믿음이 사울 왕에게는 없다.
사무엘서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이 쓰시는 영적인 지도자들, 믿음의 사람들을 이야기하신다. 하나님은 요나단과 같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부르셨는데 실제 현실의 문제 앞에서는 믿음이 전혀 발휘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 이런 경험을 통해 믿음이 성장해야 한다. "아, 주님의 교회는 이런 은혜로 사는구나. 주님의 교회는 세상의 도전이 올 때 이렇게 순종하며 갈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가지고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사울 왕에게는 영적인 성장이 없다. 십 년, 이십 년 뒤 골리앗과의 전쟁에서도 사울은 똑같은 판단을 한다.
- 목사님은 권하셨다. "사무엘서를 쭉 읽어 보시면서 사울 왕의 믿음을 한번 보십시오."
- 우리는 모두 믿음이 연약한 가운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믿음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굳건해지고 성장하고 장성하는 쪽으로 자라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울에게는 그런 영적인 성장과 믿음이 자라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 사울은 일관된다. 현실적이고, 현실을 바라보고,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때 자라지 않는다.
- 영적으로 자라지 않으면 어떤 상태에 빠지게 되는가. 사울과 같이 영적으로 파멸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 구원에서 떨어지는 일이 생기게 된다.
6-8. 요나단과 다윗 — 친구라기보다 본보기
사울 왕과 요나단을 자세히 비교해 보라고 하셨다. 요나단은 현실의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요나단의 믿음을 본받은(목사님 표현으로는 "흉내 낸") 사람이 다윗이다.
다윗과 요나단은 또래 친구였을까
주일학교를 다닌 분들은 다윗과 요나단이 친구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사님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본문과 성경을 조금만 살펴보면 다윗과 요나단이 친구가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 사울 왕이 40세에 왕이 되었고 40년간 통치했다고 사도행전에 나와 있다. 그러면 사울 왕이 죽었을 때는 80세가 된다고 보자.
- 요나단은 첫째 아들이므로, 사울이 80세였다면 그때 요나단의 나이는 아무리 적어도 50 정도는 될 것이다.
- 사울이 죽을 때 다윗의 나이는 성경에 서른 살이라고 나와 있다.
- 그러므로 아무리 짧게 보아도 다윗과 요나단은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가량 차이가 난다(자막에는 "열다섯 살 내기 숭산에"로 들림). 친구라고 하기에는 친구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다윗은 자라면서 요나단을 늘 자기의 롤 모델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블레셋의 모든 군대를 박살 내는 일에 쓰임 받았던 사람이 요나단이다. 골리앗이 나왔을 때 "저 골리앗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서 싸웠던 사람이 다윗이다.
왕이 되지 못하는 것을 개의치 않은 사람
- 참 안타깝다. 아버지의 불신과 불순종과 왕권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다윗과 같은, 어떻게 보면 다윗보다 인간적으로나 성품이 더 뛰어났던 요나단이 왕위를 계승하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쓰임 받지도 못했다.
- 그런데 요나단은 자기가 왕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 사람이다. 다윗과의 만남에서 한 말을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를 왕 삼으셨다. 우리 아버지도 알고 나도 안다. 네가 왕이 되어라. 나는 왕이 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
- 정말로 겸손한 사람이다. 정말로 아깝게 죽은 사람이다. 짧게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이 요나단이 가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반드시 쓰신다.
요나단에게 묻는다면
"요나단, 너무 아깝습니다. 당연히 왕이 되셔야 하는데 왕이 안 되셨습니다. 더 많은 존경을 받으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라고 묻는다면 요나단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왕이 되고 안 되고는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왕이 되면 되지요. 하나님께서 나를 써 주신 것, 교회가 어려울 때, 이스라엘이 어려울 때 나를 써 주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써 주신 것만으로 저는 족하며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요나단이 아마 이런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확실히 믿는다고 하셨다.
6-9. 한 집안, 너무나 다른 운명 — 믿음은 자라야 한다
한 집안에 같이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의 운명이 너무나 다르다.
- 사실은 사울 왕이 이렇게 쓰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사울은 한 집의 가장이다. 교회의 지도자다. 최초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름 받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던 사람이다.
- 그러나 사울은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성장하는 일에 자라지 않는다.
이것은 직분자뿐 아니라 모든 교인, 특별히 한 집안의 가장과 남편 된 이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믿음이 성장하고 자라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자라야 한다.
"그것이 자라지 않아도 구원받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 막대한 지장이 있습니다.
- 사울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초대 왕으로 부름 받았으나, 그의 마지막 모습은 하나님을 아는 믿음과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자라지 못하여 마귀의 종이 되고 그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임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준다고 하셨다.
- "선 줄로 생각하십니까? 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 이것이 사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요나단 — 높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본 사람
- 요나단은 짧게 살았다. 너무 아깝게 살았다. 왕이 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음에도 요나단과 같은 사람은 그런 일에 개의치 않는다.
-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은혜가 있고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현실 속에서 현실을 보고 있지만 눈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하시는 일에 모든 삶과 생명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 요나단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 반드시 역사하신다.
- 세상에서 존경받으며 살 수 있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자리에 있을 수 있다. 요나단은 그런 자리에 있었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요나단은 "나를 이 자리에 두신 하나님, 나를 이 자리에 두셔서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을 항상 바라보며 살아간 사람이다.
- 사울을 높은 자리에 올리셨다. 올렸더니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왕권을 바라보고, 현실만 바라보았다.
- "하나님이 이 상황 가운데 저를 왕으로 삼아 주셨는데, 저를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로, 직분자로 선출해 주셨는데, 제가 이 교회를 위해, 주님의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를 끊임없이 듣는 일에, 순종하는 일에 계속해서 자라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그 사람을 축복하시고 교회를 축복해 주신다.
6-10. 코로나의 시간, 그리고 우리의 남은 시간
- 코로나가 시작되었지만 머지않은 날에 끝날 것을 우리는 기대한다. 코로나는 반드시 끝날 것이다.
- 그것과 함께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섬김도 머지않은 날에 끝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있는 우리 중에도 십 년이 되지 않아, 이십 년이 되지 않아 믿음의 싸움을 마쳐야 할 사람이 많이 있다.
- 코로나가 끝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예배 자리에 모였을 때, 이 코로나 기간 가운데 하나님께 눈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교회로, 예배로 모일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하셨다.
6-11. 요나단을 보며 묻는 질문
목사님은 요나단을 보면서 회중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셨다.
- 지금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상황 속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코로나의 어려움도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가정적인 어려움도, 직장과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다.
- 그 상황 속에서 요나단처럼,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이 상황 속에서 나를 통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나는 지금도 바라보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인을 찾는 사람
- "하나님, 저에게 이런 자리를 주셨습니다. 이런 책임을 주셨습니다. 이런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런 질병을 주시고 이런 환경을 주셨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 이렇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인을 기다리고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다.
- 기도의 자리에 가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사울처럼 "아, 왕이 됐다. 나는 이런 복을 받았다" 하며 세상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회개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란다.
- 말씀을 기억하면서 스스로 물어보자.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금 듣고 있는가."
- 그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사인을 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내가 싸워야 할 믿음의 선한 싸움에 힘쓰며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본문 앞뒤의 사건 흐름 (사무엘상 13-14장)
| 순서 | 사건 | 성경 |
|---|---|---|
| ① | 요나단이 게바에 있던 블레셋 수비대를 쳤고, 블레셋이 대군을 모아 믹마스에 진을 쳤다. 병거와 마병,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백성이었다. | 삼상 13:3-5 |
| ② | 이스라엘 백성이 굴, 수풀, 바위틈, 은밀한 곳, 웅덩이에 숨었고 일부는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갔다. | 삼상 13:6-7 |
| ③ | 사울이 길갈에서 사무엘을 기다리다가 백성이 흩어지자 직접 번제를 드렸다. 사무엘이 와서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설교에서 말씀하신 '왕의 불순종'과 '실수'가 이 일이다. | 삼상 13:8-14 |
| ④ | 남은 군사 600명. 블레셋 노략꾼 세 부대의 약탈. 철공이 없어 무기가 없는 형편. (오늘 본문) | 삼상 13:15-23 |
| ⑤ | 요나단이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 병기 든 소년과 블레셋 부대로 건너갔다. 사울은 기브아 변두리 석류나무 아래에 600명과 머물러 있었다. | 삼상 14:1-3 |
| ⑥ | 요나단의 믿음의 고백과 표징. (오늘 본문) | 삼상 14:6-10 |
| ⑦ |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올라오라"고 했고,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며 손발로 기어 올라갔다. 처음에 약 20명을 쳤고, 블레셋 진영에 큰 떨림이 일어나 서로 칼로 치며 흩어졌다. | 삼상 14:11-16 |
| ⑧ | 사울과 백성이 합류했고, 숨었던 이들도 나와 추격했다. "여호와께서 그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 삼상 14:20-23 |
설교에서 언급된 다른 성경 이야기
| 이야기 | 내용 | 성경 |
|---|---|---|
| 사사 시대 |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설교의 "자기 소견에 좋을 대로"가 이 구절이다. | 삿 17:6, 21:25 |
| 기드온과 미디안 병사의 꿈 |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두려우면 적진에 내려가 그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한 병사가 보리떡 한 덩어리가 굴러와 장막을 무너뜨리는 꿈을 말하자, 동무가 "이는 기드온의 칼이다. 하나님이 미디안을 그의 손에 넘기셨다"고 풀이했다. | 삿 7:9-15 |
| 다니엘의 세 친구 |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금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하며 "하나님이 능히 건져 내시겠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섬기지 않겠다고 했다. | 단 3:16-18 |
| 골리앗과의 전쟁 |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이 40일 동안 일대일 싸움을 청했으나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놀라 크게 두려워했다. | 삼상 17장 |
| 요나단이 다윗에게 한 말 |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 삼상 23:16-18 |
| 요나단과 사울의 죽음 | 길보아 산 전투에서 요나단과 형제들이 전사하고 사울도 죽었다. | 삼상 31:1-6 |
연대와 나이에 관하여
- 사울의 통치는 주전 약 1050~1010년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사도행전 13:21은 사울의 통치 기간을 "사십 년간"이라고 한다.
- 사울이 왕이 될 때의 나이는 사도행전이 아니라 사무엘상 13:1에 나온다. 개역개정은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로 옮겼는데, 이 구절은 히브리어 사본에서 숫자가 빠져 있어 번역본마다 다르게 옮기는 대목이다.
- 다윗이 서른 살에 왕이 되었다는 기록은 사무엘하 5:4에 있다. 사울이 죽은 뒤 요나단의 동생 이스보셋이 왕이 될 때 40세였다(삼하 2:10)는 기록을 보면, 형 요나단이 다윗보다 나이가 꽤 많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만 정확한 나이 차이는 성경에 직접 나오지 않으며 추정이다.
- 사사 시대의 길이는 사사기 11:26의 "삼백 년"을 근거로 대략 300년 남짓으로 보는 견해와 더 짧게 보는 견해가 있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믹마스 | 예루살렘 북쪽 약 11km의 산지 성읍. 블레셋이 진을 친 곳. 깊은 골짜기(와디)를 사이에 두고 게바와 마주 본다. |
| 게바 / 기브아 | 베냐민 지파의 성읍들.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이자 근거지다. 사울과 요나단의 군사가 머문 곳. |
| 믹마스 어귀(고갯길) | 믹마스와 게바 사이의 험한 골짜기 길. 요나단이 건너간 곳에는 양쪽에 '보세스'와 '세네'라는 험한 바위가 있었다(삼상 14:4-5). 설교에서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공격했다"고 하신 지형이다. |
| 길갈 | 요단강 가까운 곳.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리다 번제를 드린 곳. |
| 길르앗 | 요단강 동쪽 지역. 백성 일부가 강을 건너 이곳까지 도망갔다. |
| 오브라, 벧호론, 스보임 골짜기 | 블레셋 노략꾼 세 부대가 향한 방향. 대체로 믹마스에서 북쪽, 서쪽, 동쪽(광야 쪽)에 해당한다. 사방으로 흩어져 약탈했다는 뜻이다. |
| 블레셋 | 지중해 해안 평야의 다섯 성읍(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가드, 에그론)을 중심으로 한 민족. 이때에는 이스라엘 산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었다.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요나단 | 사울의 맏아들. 믹마스의 승리(삼상 14장) 뒤, 다윗과 언약을 맺고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삼상 18:1-4, 20장). 아버지와 함께 길보아 산에서 전사했다. 다윗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가를 지었다(삼하 1:17-27). |
| 사울 |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첫 왕. 키가 크고 준수했다(삼상 9:2). 길갈의 번제(13장)와 아말렉 전쟁의 불순종(15장)으로 버림받았다. |
| 병기 든 소년 | 장수의 무기를 들고 따르며 함께 싸우는 수행 병사.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겠다"고 답했다(삼상 14:7). |
| 사무엘 |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
| 다윗 | 이새의 아들. 골리앗을 이겼고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삼상 13:14, 행 13:22)으로 불린다. |
| 기드온 | 사사. 300명으로 미디안 대군을 이겼다(삿 6-8장). |
| 느부갓네살 | 바벨론 왕. 금 신상을 세우고 절하지 않는 자를 풀무 불에 던지게 했다(단 3장). |
7-4. 문화
철과 무기 — 블레셋의 기술 독점
- 당시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던 때였고, 블레셋은 철을 다루는 기술을 쥐고 이스라엘에 대장장이를 두지 못하게 했다(삼상 13:19). 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지배 정책이다.
- 농기구의 날을 벼리는 값은 개역개정 본문에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지만, 새번역 등 다른 번역은 21절을 "보습이나 곡괭이를 벼리는 데는 삼분의 이 세겔"처럼 값으로 옮긴다. 히브리어 본문의 '핌'이라는 낱말이 약 3분의 2 세겔 무게의 추(저울추)임이 발굴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설교에서 "비용이 엄청나게 비쌌다"고 하신 근거다.
할례 받지 않은 자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표다(창 17:9-14). 요나단이 블레셋을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 부른 것은 깔보는 말이기보다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다윗도 골리앗을 같은 말로 불렀다(삼상 17:26, 36). 설교에서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을 위해 일하신다"고 풀어 주신 까닭이다.
표징을 구하는 일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려고 표징을 구한 예가 있다(기드온의 양털, 삿 6:36-40). 요나단의 경우 정한 조건이 군사적으로 유리한 쪽이 아니라 오히려 불리한 쪽(높은 곳의 적에게 기어 올라감)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고지를 차지한 쪽의 유리함
고대 전투에서 높은 곳은 활과 돌을 쏘기 좋고 적이 올라오는 동안 지치게 할 수 있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요나단은 손과 발로 기어 올라갔다(삼상 14:13).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언약(言約)의 백성 | 하나님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으로 묶으신 백성.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신약에서는 교회를 가리킨다. |
| 구약의 교회 | 목사님이 이스라엘을 "구약의 교회"라고 부르시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보는 이해에 따른 표현이다(행 7:38 "광야 교회"). |
| 표징(表徵, 사인) | 하나님의 뜻이나 약속을 확인시켜 주는 표. 개역개정 삼상 14:10의 낱말이다. |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단 3:18. 하나님의 능력을 믿되 결과는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믿음을 나타내는 말. |
|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 삼상 14:6. 능력은 확신하되 이번에 그렇게 하실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표현. 설교에서 "겸손하고 신중한 믿음"이라고 하신 근거다. |
| 무신론자(無神論者) |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 설교에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결정에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가리켰다. |
|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고전 10:12. 바울이 광야에서 넘어진 이스라엘을 본보기로 들며 교회에 준 경고. |
| 믿음의 선한 싸움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
| "착하고 충성된 종" |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종에게 한 칭찬(마 25:21, 23). 설교의 "착하고 훌륭한 종"이 이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
| 직분자(職分者) | 교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등 직무를 맡은 사람. |
| 영적 침체 | 믿음이 식고 말씀과 기도에서 멀어진 상태.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가 많아 고유명사와 일부 표현은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블레셋 세 부대의 방향을 말씀하신 대목과 마무리 기도의 중간 부분은 자막이 깨져 뜻이 통하는 범위만 옮겼습니다.
- 다윗과 요나단의 나이 차이는 자막에 "열다섯 살 내기 숭산에"로 들려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가량"으로 옮겼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영상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설교에서는 사울이 40세에 왕이 되어 40년 통치했다는 내용이 "사도행전에 나와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21에는 통치 40년만 나오고, 즉위 나이 40세는 사무엘상 13:1(개역개정)에 나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나이 차이는 이런 기록들에서 미루어 본 추정입니다.
- 골리앗과의 전쟁이 "십 년, 이십 년 후"라는 말씀은 목사님의 어림이며, 성경은 두 사건 사이의 햇수를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 사울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졌다는 말씀은 6장에 하신 그대로 적었습니다. 성경은 사울의 마지막을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대상 10:13-14)이라고 평가하지만, 그의 영원한 운명을 직접 밝히지는 않아 이 점은 해석자에 따라 견해가 갈립니다.
- 예배 마칠 때 부른다고 하신 찬송은 가사("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만 자막에 나와 곡명은 적지 않았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 사사 시대의 길이, 지명의 정확한 위치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